도박중독 환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도박중독으로 치료받은 20대가 최근 5년 새 2배 이상 급증하는가 하면 도박범죄로 검거된 10대 청소년은 2021년 이후 증가세다. 불법 도박장이 온라인으로 옮겨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돼서다. 이번 달 기준으로 불법 도박 규모가 10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도박중독은 치료가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손 자르면 발로 하고, 발 자르면 혀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도박중독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분명 도박중독에서 빠져 나와 이전의 삶을 회복한 사람들이 있다. 진심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최삼욱 원장에게 도박중독의 증상, 치료 등에 대해 물었다.
-사람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박 자체가 재미있다. 불확실성과 간헐적인 보상 때문이다. 간단한 점심 내기 사다리타기만 해도 결과를 모를 땐 기대를 하고 예측을 하며 스릴감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수백, 수 천만 원의 보상이 걸려 있으면 어떨까. 도박에서의 승리는 뇌의 보상체계를 바꿔버릴 정도의 자극이다. 이 자극을 언제 또 얻을 수 있을지 몰라 포기하지 못한다.
여러 환경적 요인들도 영향을 끼친다. 사실 도박이라는 건 인간하고 떼어낼 수 없는 놀이다.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도박에 빠지는 건 아니다. 성격특성이나 접근성, 사회적 분위기 등도 한 개인을 도박에 빠져들게 만든다.
-도박 중독에 유의해야 하는 성격도 있나? 자극추구 성향이 강하면 도박에 빠질 위험도 크다. 지루한 상황에서 항상 새로운 자극을 찾는 성격특성인데 어릴 때부터 티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 게임 자체를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하며 사고방식이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남 얘기 안 듣고 자기 생각을 과시하는 성격이라면 도박에 빠지기 쉽다.
또 하나는 스트레스나 불안에 취약한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 유형은 도박에 빠지면 채무에 대한 부담감 등을 견디기 어려워해서 바로 도박을 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크다. 다만 이러한 성격특성만 도박에 빠지는 건 절대 아니다.
-도박이 뇌까지 바꾼다?
마약, 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적인 물질이 아니라 행위가 도파민 시스템에 작용할 뿐이다. 인간은 자극을 받을 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와야 쾌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즐거운 행위의 도파민 점수가 100이라면 도박은 1000이다. 한 번 1000을 맛보면 다른 자극은 재미없어진다. 보상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게다가 똑같이 1000을 경험하려면 배팅 액수가 늘어나야 한다. 소위 말하는 내성이 생기고 중독으로 나아간다.
-도박에 중독되면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나? 사람에 따라 달라서 단정하긴 어렵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하나 있다. 빚을 내서 도박을 하다가 채무가 감당이 안 되면 가족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이때 거짓말을 한다. 도박중독자들의 특성이 자꾸 숨기고 축소하는 것인데 전세 문제, 친구의 상황 등을 이유로 돈을 빌려 달라하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층. 10대까지 도박에 중독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20년 전까지만 해도 도박은 40~50대의 전유물이었다. 이때는 도박을 하려면 경마장, 카지노, 하우스 등 실제 장소를 방문해야 했고 게임 한 판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직접 연구해본 적이 있는데 오프라인 도박이 주를 이룰 땐 중독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기 까지 평균 10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후로는 얘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불법 도박장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온라인 불법 도박은 베팅 액수에 한계가 없고 전 세계 도박장에 접근할 수 있다. 게임도 5분, 3분 만에 끝나는 것들이 많다. 전에는 10년 결렸던 게 1~2년 만에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실제 우리 병원에 도박중독으로 내원하는 환자들 중 20~30대가 제일 많다. 중학생 때 도박을 시작해 고등학생 때 심각한 수준으로 내원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요즘에는 군대에서도 많이 하는데 입대 전에는 도박에 도자도 모르다가 군대에서 배워가지고 의가사전역하는 사례도 봤다. 과거엔 없던 현상들이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몫한다? 최근 사회적인 분위기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를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파이어족’이라는 용어처럼 말이다. 실제로 가능한 사례가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언론, sns에서 이런 사례를 접하면 괜히 잘 살고 있는 사람도 나만 뒤처지거나 빨리 큰돈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도박중독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박 중독의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사실 진단이 어려운 질환은 아니다. 미국 정신의학회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의 9가지 항목 중 4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도박중독이라 진단한다. ▲도박을 해서 돈을 번다는 집착 ▲베팅 액수가 점점 커지는 내성 ▲안 하면 짜증나고 불안해지는 금단증상 ▲그만두려고 해도 안 되는 조절실패 ▲일상에서의 기능 이상 ▲채무 ▲죄책감,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회피성 도박 ▲손실은 만회하려는 추격 도박 ▲거짓말 등이 있다.
문제는 초반에, 비교적 증상이 가벼울 때 내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도박중독도 초기에 치료를 시도하면 개선될 여지가 많을 텐데 이미 심각해진 걸 가족들이 알고 병원에 가자고 설득해 겨우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단 기준 9개 중 2개만 해당하면 취미라 볼 수 있나? 저위험 도박이라 볼 수 있다. 재미나 사교 목적으로 도박을 하지만 도박으로 인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단계다. 이렇게 도박중독의 심각성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기 있다. 9가지 문항에 점수를 매겨서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도박중독이 다른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나? 공존질환이라고 보면 된다.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중독이 대표적이다. 도박중독이 해당 질환들을 초래했다기보다는 같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ADHD는 같이 나타나기도 하고 도박중독 위험을 키우기도 한다. 심각한 도박중독 환자는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일반 집단에 비해 자살률이 높다는 보고 결과가 많다.
-치료 옵션은 무엇인가?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약물을 먹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계속 관리하고 구체적인 사항들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인지행동 치료의 내용들을 잘 배우고 장기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보조적으로 항갈망제 등의 약물 치료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ADHD, 우울증 등 공존질환을 치료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단도박모임을 권유하기도 한다. 도박 문제를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조모임인데 실제 도움을 받았던 환자들이 많아서 병원 치료를 받더라도 병행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완치가 가능한가? 완치라는 개념은 없다. 도박중독의 치료 목적은 도박을 끊는 것 자체가 아니라 망가진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끊은 다음에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뇨병과 비슷하다. 도박중독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치료 의지인데 도박을 끊고 싶다는 환자의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변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도박중독이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도박중독은 치료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가족들도 ‘어차피 못 끊는다’고 단정하니 분노하고 비난하고 절망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인식해야 병원을 방문하거나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나? 대신 채무를 변제해주면 안 된다. 종종 가족들이 환자를 병원이나 센터로 유도하기 위해 돈을 갚아주는 식으로 협상을 시도하곤 한다. 가족들 입장에선 고육지책이겠지만 제일 안 좋다. 환자는 스스로 죄책감을 갖고 치료 동기로 삼는 과정이 필요한데 빚을 대신 갚아주면 치료 의지가 싹 사라질 수 있다.
도박중독의 원인은 돈이 아니라 뇌의 변화다. 빚이 없어졌다고 도박을 멈추는 사례는 못 봤다. 다정하게,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받아보자고 권유하는 한 편, 채무에 관해서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재발하는 비율은 어떻게 되나? 연구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계산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임상적으로 3개월 만에 50%는 재발하고 나머지 절반 중에서도 50%는 6개월 안에 재발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1~2년 도박을 안 하면 재발률은 크게 떨어진다.
-도박중독 치료에 있어 제도적으로 시급한 부분은?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 특히 도박에 노출되는 청소년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시작하면 중독성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요원한 얘기지만 학교에서 일찍부터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또 쉽진 않겠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들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에서 도박중독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도박중독 치료를 담당하는 유일한 정부 기관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다. ‘치유’라는 명칭부터 도박중독을 치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복지부 소속 전문가는 없는 것으로 안다. 게다가 해당 기관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산하에 있다. 사행산업을 관리하며 증진시키는 성격을 갖는 곳에서 치료 관련 정책을 펼치는 게 쉬워보이진 않는다.
-합법적인 도박도 중독되나? 당연하다. 물론 주말에만 도박장을 열거나 베팅 금액의 상한선을 정해두는 등 이용자들이 도박중독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한 몇 가지 장치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이다. 말이 합법이지 중독의 요소는 다 공유한다. 전세계적으로 도박중독의 유병률이 적으면 2~3%, 많으면 5%인 이유다.
-투자는 어떤가? 사실 최근에 젊은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이유는 도박도 많지만 투자도 꽤 많다. 투자를 투자답게 안 하고 중독된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의학적인 접근법도 없을뿐더러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린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조금 관심 있게 봤던 건 워렌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1920년대에 정립한 개념이다. 분석, 리스크 관리, 적정 수익 중 하나라도 없으면 투기라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라고 느껴서 방문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 가지가 다 없는 경우가 많다. 벌 것만 생각하고, 빌려서 하고, 인터넷에 좋다고 하는 종목에 투자한다. 투기에도 중독되는 지에 대한 의학적인 합의는 없다. 그런데 분명 중독의 요소는 있다. 투자 유형이 주식이냐, 코인이냐를 따지기 보다는 내가 투자할 때 어떤 행동 패턴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앞선 도박 진단 기준에서 ‘도박’을 ‘투자’로 바꾸고 해당되는 항목이 많다면 행위에 중독됐다고 볼 수 있다.
-도박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도박 중독자들도 일종의 피해자일 수 있다. 한 번의 일탈이 또는 타의가 중독으로 이끌었을 수 있다. 환자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일상에 복귀할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걸 이해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꾸준히 치료받다 보면 분명 회복된다. 실제 그런 사례를 많이 봤으니까 용기를 내서 치료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최삼욱 원장은…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울산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에서 정신과 수련을 마치고, 2003년 중독치료 특화병원인 성안드레아병원에서 중독센터장으로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울산대병원, 을지대병원을 거쳐 현재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원장이다.
그는 행위중독 전문가다. 20년간 특히 도박중독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치료해 왔다. 한해 120명의 도박중독 환자들을 본다고 한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 ‘Journal of Behavioral Addiction’ 편집위원, ICBA(국제행위중독학술대회) 학술위원 등의 국내외 학술 및 교육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국내외에서 집필한 90여편의 논문 중 ‘중독재활총론’, ‘중독정신의학’에서 도박 및 행위중독 부분을 공동집필했다. 최근에는 투자나 주식 중독에 관심을 갖고 ‘주식은 심리다’라는 저서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