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약물중독자들] ③“남성에 의해 중독되는 여성 많아”

지난해 전체 마약사범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2.3%(8910명)로 역대 처음으로 30%대를 넘겼다. 마약사범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여성이라는 뜻이다. 여성들은 주로 남성을 통해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남성을 통해 중독되지 않더라도, 마약에 중독된 뒤 경제적으로 종속되면서 성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여성들은 마약중독자들의 회복을 위한 자발적 활동인 자조모임에 잘 참가하지 않고, 참가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여러 약물중독자 자조모임을 지속적으로 찾아간 끝에 몇몇 여성 중독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한 여성은 긴 시간 취재에 응했지만, 기사화하지는 말아 달라며 뒤늦게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기자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혹시라도 주변에 마약 중독 사실이 알려질까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여성 중독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설득을 계속한 끝에 30대 여성 중독자 두 사람을 심층 취재할 수 있었다. A씨(37)는 19살 때부터 14년간 필로폰 중독에 시달렸다.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세 차례의 집행유예에 이어 1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4년 5개월째 마약을 끊은 상태인 단약을 유지하고 있다. B씨(32)는 2년 4개월간 마약 중독에 시달렸고, 11개월째 단약 중이다. 마약 투약과 공동매수, 판매 등의 혐의로 기소돼 다음 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 37세 여성 A씨..가출 뒤 도우미 생활하다 호기심에 필로폰 손대

37세 여성 마약 중독자 A씨의 가정사는 기구했다. 매일 같이 엄마를 때리는 아빠, 죄인처럼 늘 맞기만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17살 때 가출해 친구 집을 전전했다. 19살이던 2005년, ‘나쁜 친구들’이 생기면서 노래방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업주 언니와 친해졌는데, 알고 보니 필로폰을 하는 사람이었다. A씨도 호기심이 생겼다. 언니가 공짜로 준 필로폰 0.05그램(g)을 스스로 팔에 놓은 게 시작이었다. 통상 0.03g이 1회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마약 중독자들은 0.1g씩 투약하는 경우가 많다. A씨는 기분이 좋았다. “그저 놀이로 생각했다”고 했다. 마약을 처음 알려준 언니는 다른 것도 권했다.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야동(야한 동영상)을 틀어서 한 번 봐봐. 제가 정신을 차려 보니까. 12시간 야동을 본 거예요. 한 가지에 꽂혀서 뭔가를 찾고 보고, 찾고 보고 한 거예요. 첫 마약을 할 때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거기에 꽂혀요.” 실제 필로폰 중독자들은 마약에 취해 있는 동안 종일 음란 영상을 본다거나, 끊임없이 걸레질만 하는 등 한가지 행동에 집착하는 증상을 보인다. 필로폰이 각성효과를 내면서 한 가지에 몰입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A씨는 점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다 보니,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충격적인 일도 많이 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도우미 일을 그만둔 A씨는 분식집, 삼겹살 가게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해 나이트클럽 가수로 일하기도 했다. A씨는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절하며 마약을 하는 이른바 ‘생활뽕’을 했다. “약발 떨어지면 약을 또 꽂아요. 또 놀아요. 또 뭐 먹어요. 좀 자요. 또 일어나요. 또 꽂아요. 생활하면서도 투약이 가능해요. 잠도 자면서 약도 하고 먹고. 사람들을 만나요. 물론 멀쩡하진 않죠.”

하지만 이내 점점 더 깊은 중독으로 빠져들었다. 마침 사귀던 남자친구가 몰래 필로폰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A씨는 남자친구에게 “나 원래 (필로폰)하는 사람이고 할 줄 안다. (필로폰을)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A씨는 남자친구가 필로폰을 판매하는 자리도 따라다녔다. 그 남성과 헤어진 뒤에도 A씨는 주로 마약을 판매하는 남성들을 만나게 되었다. A씨는 “나락에 빠져서 살았다”고 했다.

결국 20대 후반에 술을 파는 ‘아가씨집’에서 일하게 됐다. 필로폰을 하면 강한 각성 효과 때문에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아서 일하는데 더 수월했다. 필로폰을 이제는 거의 매일 했다. 투약하는 양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다. A씨는 “(마약)중독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달픈 인생...끊이지 않는 자살 충동

A씨의 생활 반경은 거의 집과 직장이 전부였다. 경찰에 적발되면 안 되었기 때문에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아있는 인간관계는 함께 약물을 하는 남자친구가 거의 전부였다.

“약을 하는 인생이 고달팠어요. 약이 깰 때쯤 되면 (베란다) 철창에 걸터앉아 있었어요. 괴로워서 죽어야 끝날 것 같았어요. 늪처럼 나오려고 헤엄쳐도 빨려 들어가니까. 끝은 결국 교도소, 정신병원, 아니면 죽음이에요.”

마약을 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책도 못 읽게 되고, 대화도 안 됐다. 단어도 많이 잊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뇌가 곯을 대로 곯았다”고 말했다. 필로폰을 하면서 생긴 망상 증상 등으로 남자친구와도 자주 싸웠다.

잦은 자살 충동에도 시달렸다. 마약을 한 뒤 밥 먹을 때마다 구토를 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약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이 너무 추해서 자괴감이 들었다. 결국 수년에 걸쳐 몇 차례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까지 했다. 5년 전엔 마약치료 전문병원 폐쇄병동에 일주일간 입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치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남성들의 성노리개가 되는 여성들

마약과 성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실제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과 섹스는 100%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A씨는 이 성관계가 여성들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권력관계에 의해 성을 착취당하는 굴레에 빠진 것이라고 했다. 남성의 ‘성적인 노리개’가 된다는 것이다. “남성 중독자들이 약봉지만 흔들면 여성(중독자)들이 달려온다고 하는데 그게 맞아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이미 중독이 돼서 착취당할 걸 알면서도 (여성들이) 가는 거예요.”

이런 착취적 성관계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우위에 있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여성(중독자)은 그 약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비싸잖아요. 살 수 있는 능력이 되려면 몸을 팔아야 하죠. 아가씨 일을 해서 돈을 벌든가, 조건만남을 해야죠.”

A씨도 큰 위험에 노출된 적이 많다. “아는 형이 있는데 마약이 많다. 소개해 줄 테니 가서 만날래? 이런 식이죠.” A씨는 “마약에 취해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약 중독자 남성들과) 같이 놀게끔 하는 그런 상황을 두세 번 경험했어요. 강간하려는 상황이 있었고. 두 번 정도 당할 뻔하다가 중간에 이상해서 도망갔어요.”

A씨는 실제로 마약에 중독된 남성들이 여성들을 몰래 꾀어 약을 먹이고 강간하거나 영상을 찍는 일이 많고, 그런 영상들이 해외 사이트에 엄청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영상 촬영을 당한 적은 없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부 마약 중독 여성들은 자신이 찍힌 영상이 없는지 확인하려고 음란 동영상 사이트를 찾아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네 차례 적발...집행유예 3번, 실형 1번
A씨는 2015년부터 5년간 경찰에 네 차례 적발됐다. 세 차례의 집행유예, 한 차례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첫 번째는 필로폰을 공급해 줬던 남자친구가 경찰에 적발되면서 A씨도 덜미를 잡혔다. 필로폰에 중독된 지 9년 만이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뒤 또다시 경찰에 적발됐다. 이번에도 아는 남성이 공짜로 필로폰을 주어서 투약했다가 경찰이 들이닥쳤다. 결국 A씨는 지난해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10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불현듯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마약에 중독된 지 14년 만인 2018년이었다. 그전까지는 솔직히 마약을 왜 끊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 싫었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함께 무작정 필로폰 투약을 중단하는 ‘생단약’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단약이 힘들다 보니 짜증이 나서 서로를 자꾸 할퀴게 되었다. 결국 3개월 만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그리고 다시 6개월간 단약했다. 이때쯤 마약 중독자였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마약 중독자들의 자조모임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서울 당산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회복을 위한 6주 과정의 프로그램도 두 차례 이수했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중독으로 인해 뇌가 망가지면서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의 증상이 발현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A씨는 자신이 왜 주변 사람들과 자주 싸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까지 하게 됐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진행되는 10회짜리 무료 상담도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단약을 하려는 마음이 서서히 스며들었다”고 말했다.
A씨의 회복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뭐니 뭐니 해도 임신과 출산이었다. 단약을 한 지 2년째이던 2021년, 소중한 아기가 찾아왔다. 남편도 중독자였기에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지, 낳아도 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마약중독자들을 다루는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마약 중독인 것도, 임신 상태인 것도, 법적인 문제에 걸려있는 것도 방송을 통해 세상에 드러냈다. 만천하에 알려지고 나면 정말 마약을 끊을 수밖에 없을 테니, 비로소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중한 아이를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었다.

자조모임도 단약에 큰 도움이 되었다. A씨는 임신했을 때 마약으로 인한 법적인 문제에 휘말려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는 건 자조모임뿐이었다.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두 살이 되던 무렵, 결국 교도소에 10개월간 수감됐다. 아이가 보고 싶어 사흘 내내 밥도 안 먹고 울었다. A씨는 교도소 안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마약퇴치운동본부의 후원자가 보내준 마약에 관한 책도 읽어보면서 단약 의지를 다졌다.

A씨는 10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친 뒤, 지난 2월 평범한 가정주부로 돌아왔다. 남편과 함께 4년 5개월째 단약을 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평소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A씨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중독자였다는 걸 잊게 된다”고 했다. A씨는 앞으로 여성 자조모임을 만들고, 마약 중독자들을 도와주는 회복 상담사로도 활동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2. 32세 여성 B씨...남자친구 통해 엑스터시 투약
2년 4개월간 마약 중독자였다가 11개월째 약물을 끊은 상태인 여성 B씨(32). B씨가 마약을 접한 계기는 남자친구였다. 교제를 한 지 6개월째,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 남자친구가 권한 게 엑스터시였다. 약을 먹으면 사이도 좋아지고 기분도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B씨는 엑스터시 한 알을 삼켰다. 2021년 2월이었다.

B씨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경험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그저 사랑스러웠다. B씨는 “뭔가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좋아지는 거죠. 싫은 사람 둘을 붙여놔도 이걸 하면 무조건 화해하고 사이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는 엑스터시의 특징 때문이다. 엑스터시는 ‘메틸렌 디옥시 메스암페타민(MDMA)’으로 불리는 암페타민계 유기화학물질이다. 투약하면 극적인 행복감, 안정감, 편안함, 자신감을 주고 스킨십 욕구를 일으켜 ‘포옹 마약(Hug drug)’으로 불린다. 주로 환각파티에 이용돼 파티용 알약으로도 알려져 있다.

B씨는 남자친구의 몫까지 한 달에 500만 원씩 약을 사는 데 썼다. 한 달 수입 300만 원을 몽땅 쏟아붓는 것도 모자라, 모아놓은 돈을 썼다. 구입처는 SNS였다. 던지기 수법을 통해 구입했다. 판매하는 사람을 통해 직접 구할 수도 있었다.

마약 하러 해외 원정까지...지난해 경찰에 적발돼
B씨는 일주일에 두 차례씩 엑스터시를 투약했다. 일을 하면서도 마약을 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투약 장소는 다양했다. 집, 콘서트장, 페스티벌 등이었다. 나중엔 마음 편히 마약을 하기 위해 한 달에 한두 차례씩 태국으로 원정을 갔다. 한 번 태국에 가면 사나흘씩 머물렀는데, 관광은커녕 호텔과 클럽만 오갔다. 남자친구는 물론, 마약을 하는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8명이었다. 대부분 평범한 회사원들이었다.

B씨는 기분을 가라앉히는 약물인 대마와 케타민를 비롯해, 환각제인 LSD, 흥분시키는 약물인 필로폰 등 다양한 마약을 접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장소에 따라 원하는 약물을 선택해 섞어서 투약했다.

결국 지난해 7월, 경찰에 적발됐다. 함께 마약을 투약하던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공항에서 적발된 뒤 휴대폰 포렌식을 하는 과정에서 B씨를 포함한 일행들의 범행이 동시에 드러났다. B씨는 마약 투약과 공동매수, 판매 등의 혐의로 기소돼 다음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B씨는 경찰에 적발되기 전까지 마약을 끊으려 한 적이 없었다. 중독인 줄 모르고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 좋은 걸 왜 안 하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비로소 객관적으로 본 건, 유치장에서였다. “제 모습을 보니 너무 처량한 거예요. 얼굴도 많이 변했고, 몸도 완전히 곯을 대로 곯아 있고. 남은 돈도 많지 않고.” 마약을 하는 동안 B씨는 한 번 마약을 하면 사흘 정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정상체중에서 10kg가량 살이 빠졌다. 수시로 자살충동도 일었다.

마약을 권한 남자친구와는 결혼까지 하게 됐다. B씨는 마약을 투약할 때 느낀 감정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고백했다.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한때 이혼을 하려고도 했지만, 지금은 남편이 열심히 약을 끊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수사당국에 적발된 뒤 11개월 동안 B씨는 자발적으로 서울 당산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심리상담프로그램, 미술치료 프로그램, 마약예방교육, 병원 치료, 그리고 자조모임 활동 등에 매진하며 단약을 이어오고 있다.

여성 마약 중독, 남성 권유가 많아
남성에게 권유를 받아 마약을 시작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조성남 대한법정신의학회장은 “(여성들은) 대부분 남자 때문에 마약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유혹하는 것이다. 그렇게 끌려 들어갔다가 나중에 주도권을 가지고 판매에 나서는 여성들도 있다. 그러나 시작은 대부분 남자들한테 끌려가는 형태다. 중독자 남성과 헤어지고 독립하면 많이 회복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마약 중독자 치료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치료감호처분을 받은 사람을 치료하는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장, 마약치료보호기관인 국립부곡병원장을 지내며 37년간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했다. 현재 을지대학교 중독재활학과 초빙교수로 을지중독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A씨 역시 조건만남 등을 통해 여성들이 마약에 중독된 남성의 덫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은 물론, 알고 지내는 여성 투약자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남성을 통해 마약에 중독됐다고 했다.

이런 문제는 장정연 세계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여성 마약사범의 경험에 관한 연구(201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연구는 여성 중독자들의 대부분이 배우자나 남성 파트너의 권유로 약물을 시작한 특성이 있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남성 파트너나 배우자가 여성 중독자의 재정적 지원자로서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더욱 남성에게 의존하게 된다. 또, 여성 중독자들은 남성보다 더 많은 사회적 낙인에 직면하며, 자녀 양육 등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갈등을 겪는다. 결국 여성 중독자들은 남성 중독자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고립되어 외로움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최대 마약치료보호기관인 인천참사랑병원의 한창길 회복상담사 역시 “여성들이 약물을 하는 경우는 남성들이 권해서 호기심에 하는 경우가 80~90%”라고 말했다. 남성이 마약 중독자인지 모르고 사귀거나 접촉했다가 마약을 접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젊은이들이 흔히 가는 클럽에서도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남성이 몰래 여성에게 마약을 타 먹여서 중독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강간 약물로 알려진 GHB나 필로폰 등을 여성의 술잔 등에 몰래 타는 경우다.

2022년 7월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는 30대 여성 종업원이 마약 의심 물질이 섞인 술을 먹고 숨졌다. 여성은 20대 남성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어지러움을 느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의 마약 시약 검사를 거절한 여성은 같은 날 본인의 주거지에서 숨졌다. 부검 결과, 사인은 필로폰 중독이었다. 함께 있던 남성은 필로폰 복용 상태에서 운전하다 숨졌다. 남성의 차량에서는 필로폰 64g이 발견됐다.
A씨는 술집에서 일하는 지인도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A씨의 지인은 남성 손님이 건네준 술이 의심스러워, 마약 성분을 검사하는 스티커 형태의 간이 검사키트에 술을 대봤다. 그랬더니 양성반응이 나왔고, 즉시 자리를 뜨면서 화를 면했다는 것이다. 이런 검사키트는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다. 몇 초 만에 술 안에 마약 성분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특히 결손 가정 등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조건만남을 하다가 이 덫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A씨는 말했다. “여성은 남자의 권유에 의한 중독이 많아요. 몰래 약물을 타서 여자를 노예로 만드는 거예요. 다이어트약이야, 흥분제야, 이렇게 속이는 거죠.”

A씨는 고등학생 등 미성년자들도 이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수원에서 여고생에게 마약을 투약한 뒤 남성들과 성매매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이 징역 9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피해 여고생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뒤 성적인 착취를 했고, 결국 가출하도록 했다. 결국 여고생은 마약 부작용으로 뇌출혈이 일어나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
여성 마약사범은 꾸준히 늘고 있다. 여성 마약사범 비율은 2019년 22.3%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32.3%(8,910명)를 기록하며 역대 처음 30%를 넘겼다. 마약류는 일반 마약, 향정신성의약품(향정), 대마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향정 부문에서 여성 사범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향정 중에서 필로폰이 가장 널리 유통된다. 향정 부문의 여성 사범 비율은 2019년 20.3%에서 지난해에는 31%까지 늘었다.

한국중독당사자지원센터 조윤하 팀장은 여성의 중독이 남성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A씨의 사례처럼 여성들 스스로 호기심에 약물을 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일상 속에 다양한 형태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처방약물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조 팀장은 “우리 일상 속에서 합법 약물이라고 할 수 있는, 처방받을 수 있는 다이어트약, 수면유도제, 안정제 등에 대한 일부 의사들의 처방 남용에 의한 약물 중독도 많다. 이제 유흥이나 조폭 등과만 연관된 게 아니고, 약물 중독으로 갈 수 있는 사회적 접촉면이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여성 마약 중독, 부작용 크고 치료율 낮아

여성의 마약 중독은 부작용이 남성보다 더 크고 치료율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4월 유럽 평의회(Council of Europe)가 발간한 ‘마약 정책에서 젠더 접근 실현하기’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마약 투약의 부작용이 더 빨리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또 2010년에서 2017년 사이 마약 중독과 연관된 여성 사망자 증가율이 92%로, 남성 65%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마약 금단 증상도 남성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지난해 ‘세계마약보고서’를 보면 여성의 마약 중독 치료율은 남성에 비해 낮다. 2021년 기준, 메스암페타민류 중독자의 절반에 가까운 45%가 여성인데도, 치료를 받는 여성은 전체 치료 인원의 27%로 4명 가운데 1명 꼴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여성이 가족의 기대와 책임 등으로 치료에 접근하는 데에 장벽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법적인 제재, 사회적 낙인 증가, 치료 중 자녀 양육권 박탈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치료를 잘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를 받는 여성 중독자 비율은 대륙에 따라서도 달랐다. 2021년 기준으로 치료받는 여성 중독자 비율은 오세아니아가 37%로 가장 높았고, 아메리카 34%, 유럽 17%로 나타났다. 아프리카는 9%에 그쳤고, 아시아는 3%로 가장 낮았다.
여성 자조모임 0곳...속 깊은 얘기 힘들어

결국 마약 중독 여성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여성 중독자들이 마음 편히 참여할 수 있는 자조모임 운영 등이 필요하다. 현재 ‘익명의 약물중독자들’, NA로 불리는 자조모임 가운데 여성 전용 모임은 한 군데도 없다.

A씨와 B씨는 자조모임에서 여성들이 유달리 소극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성들이 모임 안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중독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들은 자조모임의 성별 구성이 남성 80~90%, 여성 10~20%인 경우가 많아 여성들이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여성 마약 중독자들이 진실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려면 성적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남성 앞에서 이런 경험을 나누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쉬운 여성’으로 보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지난 3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서울 서초동의 한 자조모임에 아홉 차례 참가하는 동안 만난 마약 중독자 여성은 단 네 명뿐이다. 인천의 한 자조모임에 두 차례 참여하는 동안 만난 여성도 세 명에 불과하다. 각 자조모임에는 통상 한 번에 10명에서 20명이 참가한다. 지난해 기준, 마약 중독자 3명 가운데 1명이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여성 참가자가 턱없이 적은 것이다. 그나마 참여하는 여성 중독자들도 기존 참가자들과 친분이 있지 않으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한 중년의 여성은 자조모임에 세 차례 참가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경험담을 나누지 않았다.

이들은 중독된 여성들이 남성을 통해 처음 마약을 접한 뒤 성관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남들이 문란한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신경이 쓰인다고 고백했다. A씨는 “여자들은 주로 성적인 이야기라 나누지 못하니까 혼자 계속 약을 하면서 몸이 망가지는 은둔생활을 한다”며 솔직한 경험담을 나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성과 여성이 분리되지 않으니 가끔 남성들이 마약과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반발심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다. “사실은 더 말을 못 하죠. (성적인) 노리개였다는 걸 누구에게 말하고 싶겠어요. 쉽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B씨의 생각도 같았다. “여성 중독자들은 와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요. 왜냐하면 저 사람들이 나를 약간 상스러운 애, 진짜 성관계만 약간 미쳐 있는 애라고 생각할까 봐요. 그래서 항상 죄인처럼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자신의 신상이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요.” 또 다른 여성 중독자도 “마약을 하면 성적인 것에 꽂힌다는 표현을 하기 부끄러워서 이야기를 안 하게 된다”고 했다.

A씨는 자조모임에 나오던 여성 참가자들이 다시 마약을 시작해서 모임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재발하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경험담을 나누고 구성원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런 유대감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단약을 유지하다가 재발한 뒤, 자살한 여성 참가자도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를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여성 자조모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각자 활동하는 지역에서 여성 자조모임을 만들 계획도 있다. A씨는 “음지에서 나오는 게 가능하면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는 힘이 있어요. (여성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큰 힘이 돼줘요. 내가 넘어지면 저 사람도 넘어질 수밖에 없으니 (잘하자). 그 힘이 커요.” B씨 역시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회복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여성 중독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숨기려고만 하면 본인만 힘들어지고 계속 자책하면서 자존감도 낮아져요. 여성들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나금동 기자


* 출처 : 단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