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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의사 처방 따랐더니 마약중독자가 되었다 옥시콘틴의 실체

작성일 : 2024-05-13 00:00:00 조회 : 266
  • 일시 2024.05.13
  • 대상 경남도민
  • 내용

    2018년 3월10일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하나인 사진가 낸 골딘(71)이 몇몇 사람들과 조용히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다. 관람객들에게 인기 많은 덴두르 신전 앞에서 골딘과 일행은 외치기 시작했다. “10만명이 죽었다!” “새클러는 거짓말쟁이!” “돈의 사원, 탐욕의 사원, 옥시콘틴의 사원!” 건물 안을 채운 인공 연못에는 이들이 던진 수백개의 주황색 약병이 둥둥 떠다녔다. 맞은 편으로 이 전시관의 기증자 이름이 선명히 새겨진 명패 ‘새클러관’이 보였다.

    202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15일 개봉)의 첫 장면이다. 그는 왜 이런 퍼포먼스를 펼친 걸까? 낸 골딘은 수술 뒤 진통제로 처방받은 옥시콘틴을 복용하고 중독됐다. 곧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의사의 처방으로 중독자가 된 이들, 중독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처방중독즉각개입(P.A.I.N:Pre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을 만들어 새클러 이름이 새겨진 미술관과 대학을 찾아다니며 기습시위를 시작했다. 구겐하임, 루브르, 대영박물관, 하버드대학교 등 전 세계인이 선망하는 이름들이 그 목록에 끝없이 이어졌다. 새클러는 1996년 옥시콘틴을 출시해 20년 만에 350억달러(약 45조9500억원)를 벌어들인 퍼듀파마사의 소유주다.

    옥시콘틴. 이제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펜타닐’이 세계적인 사회문제가 되는 데 길을 닦은 마약성 진통제다. 펜타닐과 같은 오피오이드 계열의 강력한 진통제인 옥시콘틴은 제3세계와 범죄, 빈곤, 일탈의 사슬로 엮여있던 마약 문제를 청결하고 안전한 병원과 약국으로 옮겨왔다. 운동하다 다리를 다친 청소년과 일하다 허리를 삐끗한 노동자들이 의사의 처방전으로 마약중독자가 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옥시콘틴 중독으로 사망한 미국인이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최소 6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옥시콘틴을 개발한 리차드 새클러의 삼촌인 아서 새클러 창업주 때부터 강력한 마케팅으로 사탕 팔듯 약을 팔아온 퍼듀파마사는 수익의 일부를 미술관과 학교에 기부하면서 예술을 사랑하고 자선활동에 진심인 기업으로 존경 받아왔다.

    정부가 직접 규제하는 의료행위가 합법적으로 마약 중독자를 양산했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수천건의 피해자 소송에 직면한 퍼듀파마의 변호인이 말한 대로 “약물남용을 옥시콘틴 탓으로 돌리는 건 알코올중독을 버드와이저가 일으켰다고 고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드라마 ‘돕식’ 중)일까?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돕식:약물의 늪’과 넷플릭스 시리즈 ‘페인 킬러’는 이에 대한 상세한 답변을 내놓는다. 2010년대부터 옥시콘틴 피해가 미국 전체를 뒤흔들면서 주요 언론들이 이에 대한 탐사 취재에 나섰고 두 작품은 각각 동명의 탐사보도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일부 이름과 사례는 각색됐지만 리차드 새클러를 비롯해 옥시콘틴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은 실명 기반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다.

    2021년 제작된 ‘돕식’은 가족처럼 이웃을 돌보던 시골 의사가 제약회사의 거짓말에 속아 자식 같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자신도 중독에 빠진 피해 사례와 퍼듀파마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이 회사뿐 아니라 미국 식품의약국(FDA), 정부와도 싸워야 했던 지역 검사들의 투쟁을 그린다. 영화 ‘낸 골딘’에 등장하는 메트로폴리탄 새클러관이 드라마에도 종종 등장한다. 퍼듀파마의 주주인 새클러가 값비싼 미술품 사이에서 우아한 만찬을 하며 매출을 늘리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무너지는 주인공 의사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이 작품으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돕식’보다 극적 요소가 더 가미된 2023년작 ‘페인 킬러’는 6회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마다 옥시콘틴으로 자식을 잃은 실제 부모들이 나와 이야기한다. 중년의 한 여성은 “15살 때 옥시콘틴 처방을 받고” 중독에 몸부림치다 “32살에 추운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아들”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지난 해 나온 넷플릭스 영화 ‘페인 허슬러’는 중독성이 없다는 가짜 데이터와 가공할 영업력으로 옥시콘틴 판매고를 올린 퍼듀파마의 영업사원(에밀리 블런트)들이 어느 지경까지 의사들을 유혹하고 매수하고 압박했는지를 집중해 보여준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서 골딘과 동료들은 4년 동안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이어나간다. 초기에는 외면하던 미술관들이 자신의 전시를 취소하겠다는 마지막 카드로 낸 골딘이 대응하자 하나씩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을 거절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많은 전시관에 붙어있던 새클러 이름도 모두 지우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권력을 제대로 쓸 줄 알았던” 미술계의 거물이 예술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수천 건의 피해자 소송을 회피하기 위해 2019년 파산 신청을 한 퍼듀파마는 60억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2300여 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시켰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법무부가 항소했고 파산 결정은 연방 대법원의 판결까지 유예됐다.

    김은형 선임기자 

    *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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